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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뿌리 아래 숨겨진 세계: 땅속 미생물과 식물의 놀라운 동업

by root8 2025. 6. 9.

베란다 화분에 시들어가던 바질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물도 제때 주고, 햇빛도 충분히 받는데 왜 이렇게 힘없어 보일까?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작년 등산길에서 본 광경이었다. 바위틈에서 억세게 자라는 소나무들. 척박한 땅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걸까?
답은 땅속 깊은 곳,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동업자들

식물 뿌리 주변은 생각보다 훨씬 북적거리는 공간이다. 뿌리 주위의 수 밀리미터 공간에 불과하지만 식물이 자라지 않는 토양에 비해 약 10배에서 100배 이상의 세균이 서식한다. 이곳을 '근권'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붐비고, 바쁘고, 온갖 거래가 벌어지는 곳 말이다.
하지만 이 거래는 우리가 아는 그런 거래와는 좀 다르다. 속임수도 없고, 일방적인 착취도 없다. 그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아주 공정한 거래다.
며칠 전 마당에 심어둔 콩의 뿌리를 살짝 들여다봤을 때였다. 뿌리에 동글동글한 혹이 달려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병든 건가 싶어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바로 뿌리혹박테리아 세균이 뿌리에 공생하면서 만든 구조물이었다.
이 작은 혹 안에서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 마치 번역가처럼 말이다. 식물은 이 박테리아에게 달콤한 탄수화물을 선물한다. 완벽한 기브 앤 테이크다.

거미줄보다 촘촘한 지하 네트워크

근권 미생물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존재는 균근균이다. 균근은 균사라고 부르는 미세한 관상의 필라멘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쌍자엽식물의 83%, 단자엽식물의 79%, 그리고 모든 나자식물이 균근과 서로 관련을 맺고 있다.
내가 처음 균근에 대해 알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송이버섯을 먹으면서였다. 송이버섯이 왜 인공재배가 안 되는지 궁금해하던 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송이버섯, 광대버섯, 무당버섯, 젖버섯 등이 산림에서만 관찰되는 균근 곰팡이라는 것을. 이 버섯들은 나무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무도 이 균근 없이는 제대로 자랄 수 없고.
숲 속을 걸으며 발밑을 보면 그냥 흙과 낙엽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미줄보다 훨씬 촘촘한 균사 네트워크가 펼쳐져 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무들은 서로 소통하고, 영양분을 나누고, 때로는 위험 신호까지 전달한다. 마치 인터넷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는 협력의 힘

균근균이 식물에게 주는 도움은 정말 다양하다. 토양에서 인산의 흡수를 촉진시키고 산성 토양에서 암모늄태 질소를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균근의 수많은 균사가 뿌리로부터 수 센티미터까지 뻗어나가며 효율적으로 무기염과 수분을 흡수한다.
내가 키우던 바질이 힘없어 보였던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분 속 흙에는 이런 유용한 미생물들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반면 산속 소나무들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미생물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었던 거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동아대 연구팀이 밝혀낸 도우미 세균과 수혜자 세균 간의 공생 협력이었다. 도우미 역할을 하는 Pseudomonas putida H3가 생산하는 숙신산을 수혜자인 Niallia sp. RD1이 이용해서 생장한다는 것. 이 두 세균이 함께할 때 토마토의 면역력과 생장이 현저히 좋아진다고 한다.

화학 신호로 나누는 대화

가장 신기한 건 이들이 서로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식물 뿌리와 뿌리혹박테리아는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특정 화학 물질을 내보내며, 뿌리에서 뿌리혹박테리아를 끌어들이기 위한 화학 신호를 내보내면, 세균은 이에 응답하여 대응하는 화학 신호를 내보내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마치 향수 냄새로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암호처럼 특별한 화학 메시지를 주고받는 거다. "나 여기 있어, 도와줄게!" "좋아, 나도 네가 필요해!"

베란다에서 시작하는 미생물 네트워크

이런 걸 알고 나니 베란다 화분을 키우는 방식도 달라지고 싶었다. 그냥 상토 사다가 심고 물만 주는 게 아니라, 미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먼저 화분부터 바꿨다. 토분은 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장 잘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통풍이 잘돼서 식물 뿌리가 숨쉬기에 좋은 화분이라니까. 그동안 쓰던 플라스틱 화분은 통풍이 안 돼서 미생물들이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웠던 거다.
그다음엔 흙을 개선했다. 보통밭흙 1g 중에는 1억 정도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는데, 시중에서 파는 상토는 너무 깨끗해서 미생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가까운 공원에서 부엽토를 조금 가져와서 섞어줬다. 물론 다량은 아니고, 전체 흙의 10% 정도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몇 주 안에 식물들이 눈에 띄게 생생해지더라. 잎색도 진해지고, 줄기도 단단해지고. 무엇보다 물을 주는 간격이 길어졌다. 미생물들이 토양 구조를 개선해서 물을 더 잘 머금게 된 거다.

베란다에서 만나는 작은 생태계

식물은 광합성으로 고정된 탄소의 6~21%를 뿌리를 통해 분비하는데 이 뿌리 분비물이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처음엔 이게 낭비처럼 보였다. 애써 만든 양분을 왜 그냥 흘려보낼까? 하지만 이건 낭비가 아니라 투자였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는 미생물들을 '고용'한 거다. 근권 미생물들은 식물 대신 더 넓은 범위에서 물과 영양분을 찾아다니고, 병원균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고, 때로는 토양 구조까지 개선해 준다.
요즘엔 베란다에서 간단한 퇴비도 만들어본다. 지렁이가 사는 환경을 조성하여 지렁이 퇴비상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고 작은 상자에 지렁이 몇 마리와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뒀다. 지렁이가 만들어낸 분이 미생물들에겐 최고의 먹이가 된다.
물론 아파트 베란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채소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유리온실의 햇빛 양은 평균적으로 1,000µmol/m2/s을 넘는데, 아파트 베란다로 오면 햇빛 양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래도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서 우리 집만의 작은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기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연결고리

요즘 베란다 화분들을 볼 때면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흙 표면 아래에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내 식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는 걸 안다. 가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너희들도 잘 지내고 있지?" 하고 속으로 인사하기도 한다.
뿌리 주변 토양 1그램당 세균은 1만 종 이상, 세포 수로는 100억 개 이상이 살고 있다니까. 내 손바닥만 한 화분 속에도 수조 마리의 생명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자연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나무고 풀이고 흙이었다면, 이제는 거대한 협력 네트워크로 보인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공동체.
우리 인간도 결국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다. 우리가 먹는 모든 식물은 이런 미생물들의 도움으로 자란 것들이니까.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에 대한 감사함이 새삼 든다.

미생물과 함께하는 베란다 가드닝 팁

앞으로는 화분을 키울 때도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려고 한다. 식물만이 아니라 그 아래 살고 있는 미생물들도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화분 선택할 때는 토분을 가장 추천한다. 과습을 막아주어 작물이 잘 자라고 또 시각적으로도 멋스럽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 텃밭을 가꾼다면 시멘트 화분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화분이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워서 식물이 잘 죽는다.
흙을 준비할 때는 상토에 부엽토를 조금 섞어주면 좋다. 부엽토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미생물들이 많이 들어있다. 아니면 전에 쓰던 화분 흙을 재활용해도 된다. 재활용 할 흙은 넓은 상토 비닐이나 신문지에 펼쳐 말리는데, 유난히 병충해가 많았던 채소가 들어있던 흙은 재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부어 버린다.
물을 줄 때는 너무 자주 주지 않는 게 좋다. 미생물들은 적당한 습도를 좋아하지만, 너무 젖으면 좋지 않은 미생물들이 번식할 수 있다.
여러분도 혹시 화분을 키우고 계신다면, 가끔 흙 아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해 보세요. 거기서 벌어지는 놀라운 협력의 드라마를. 아마 식물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자주 묻는 질문

Q. 베란다에서 미생물을 활용한 화분 키우기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가장 먼저 통풍이 잘 되는 토분으로 화분을 바꾸고, 상토에 부엽토를 10% 정도 섞어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물은 겉흙이 마르면 충분히 주되, 너무 자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시중에서 파는 미생물 제품을 사용해도 되나요?

A. 농업용 유용 미생물 제품들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지만, 가정원예에서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미생물 환경이 더 안정적입니다. 부엽토나 잘 발효된 퇴비를 소량 사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Q. 어떤 식물이 베란다에서 미생물과 함께 키우기 좋나요?

A. 허브류(바질, 로즈마리, 민트)와 잎채소(상추, 쑥갓, 청경채)가 베란다 환경에 적합합니다. 이들은 뿌리 구조가 단순해서 미생물과의 공생 관계를 쉽게 형성할 수 있습니다.

Q. 겨울철 베란다 화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겨울에는 식물의 생장이 멈추므로 물 주기 간격을 늘리고, 미생물 활동도 둔화되므로 과도한 비료는 피해야 합니다. 화분을 바닥에서 띄워서 차가운 기운을 차단하는 것도 좋습니다.

Q. 미생물이 잘 활동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 건강한 미생물 활동의 신호는 흙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흙냄새, 적당한 습도 유지, 식물의 잎색이 진해지고 뿌리가 튼튼해지는 것 등입니다. 곰팡이 냄새가 나거나 흙이 끈적해지면 미생물 균형이 깨진 것일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